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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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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 저항의 확산 === 10월 16일 밤 대성당을 포위하고 있던 계엄군이 철수하며 시민들이 밖으로 나왔지만, 광장의 침묵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군정은 포위 해제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공식 발표는 단 두 줄이었다. "상황은 종료되었으며, 대성당 내 모든 시민은 안전하다." 사망자가 있었고 병력의 폭력과 인권침해는 명백했지만, 군정은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많은 시민들은 이 발표를 "우리의 고통과 분노는 정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대성당을 빠져나온 시민들은 육체적으로는 탈진했지만 흩어지지 않았다. 성당 안에서 형성된 연대의식, '우리가 함께 버텼다'는 경험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몇몇 시위자들은 즉석에서 "대성당을 감옥으로 만든 자들에게 더 이상 맨몸으로 맞설 수 없다"고 외쳤고, 이 발언은 현장에 있던 노동자, 학생, 간호사, 교사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감대를 얻었다. "비폭력은 도덕의 고지지만, 방패 없는 자를 치는 주먹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말은 이후 시민방위조의 선언문에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튿날인 17일, 벨포르 중심가의 민간 철공소 「르베르제 작업장」에서는 밤사이 금속노조 소속 기술자 13명이 제작한 철제 곤봉과 방패 240개가 시민조직에 제공되었다. 이는 벨포르 시내에서 처음 등장한 조직적인 자위 장비였다. 같은 날 오후 벨포르 북서부 보급창에서 군용 탄약 수송 트럭 한 대가 정체불명의 시민 무리에 의해 탈취당했다는 소식이 돌았고, 밤사이 「시민 무장 자위대」라는 이름의 전단이 처음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중요한 전환점은 롱비치에서 찾아왔다. 17일 저녁 롱비치 해군기지 내 제8훈련보급연대 소속 후방병기반 상사와 중사급 부사관 몇 명이 무기고 문을 열고 M16 소총과 탄약, 수통, 전술통신 장비 등을 인근 조선소 시위대에게 넘겼다. 이들은 "더 이상 명령을 따를 수 없다"며 병영을 나왔고, 심야에 도시 외곽 공장지대의 시민단체 본부에서 군복을 벗은 채 공개 성명을 발표하였다. > “우리는 폭정의 방패가 되기를 거부한다. 조국은 위원장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 쉬는 시민이다.” 이 사건은 단일 병영 이탈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국방부는 급히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같은 날 밤 RBC 송신소 기술진 일부가 비어 있는 주파수로 내보낸 해적방송을 통해 부사관들의 증언과 무기 사진이 전국에 알려졌다. 이는 시민들에게 무장 저항이 실현 가능하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던졌고, 무장화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입증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일 새벽 벨포르 남부 생지구역에서는 청년조가 군수공장에서 전기충격봉과 헬멧, 구급 키트를 확보해 배포했으며, 동시에 구역별 '시민방위조'(Civic Defense Committees)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방어 진지 구축과 초소 배치, 야간 순찰을 자율적으로 시행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 초소를 점거하고 기물을 몰수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경찰은 점차 중심 시가지에서 철수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치안의 공백을 시민들이 메우는 상황이 되었다. 19일에는 군 내부의 분열이 더욱 가시화되었다. 벨포르 서부에 주둔한 제7보병사단 기갑지원대대 제3중대는 병기고에 접근하려는 헌병의 출입을 거부하고 병영을 봉쇄한 채 장비를 봉인하였다. 이때 발표된 익명의 장교 성명서는 다음과 같았다. >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를 질문하지 않고, 그 분노에 총을 겨누는 자는 군이 아니라 용병이다. 우리는 군인이며, 조국은 국민이다.” 위기감을 느낀 국가비상위원회는 수도 방어선에 특수부대와 장갑차 부대를 집중 재배치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미 정보망을 통해 이를 파악하고 있었고, 20일을 전후해 벨포르 시내에는 진지와 연합 초소, 연막탄 제작소가 마련되었다. 민간 총기 소지가 합법인 루이나에서 민간 소총을 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장도 곳곳에 들어섰다. 일각에서는 "이제 혁명은 노래가 아니라 지도와 탄약 위에서 논의된다"는 말까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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